어느새 조직에서 디자이너 혹은 아티스트로 일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자부할 만큼 조직 안에서 정말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스타트업에서 UI/UX 디자이너로 시작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외국계 게임 회사로 이직하고, 게임 아트 콘셉트와 UI, 개발 및 구현까지 전 과정을 다루는 일을 해왔습니다. 지금도 Associate Art Director로 일하고 있죠.
타이틀과 역할은 조직에서 성장하며 계속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 만큼은 같았습니다.
웹과 앱 서비스를 만들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메이저 게임 개발의 전 과정을 경험하며 런칭과 라이브 서비스, 팀 리딩까지… 참 많은 일들을 해왔죠.
그런데, 이상하죠.
이렇게 많은 걸 했는데도 문득 돌아보면, 세상에 ‘나’의 흔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회사의 이름과 프로젝트 이름은 남았지만, 정작 제 이름은 없더라구요.
조직의 결과물 속에서 희미해진 ‘나’
디자이너로서 조직의 성과에 기여한다는 건 큰 보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사실이 선명해졌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많은 걸 남겼지만, 세상에는 제 자취가 없다는 것.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제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저는 반사적으로 회사 이름을 먼저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제가 제 자신을 회사와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죠.
결국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자산을 쌓아야 하는구나.”
간판을 떼고, 생각을 쓰기 시작했다
그 깨달음 이후로 저는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배운 것, 느낀 것, 머릿속에 쌓여 있던 생각들을
계급장과 간판을 잠시 내려놓은 채 한 줄씩 꺼내보기로 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신기하게도,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제 사고의 패턴이 보였습니다.
프로젝트에 몰입하느라 잊고 있던 ‘나만의 시선’이 서서히 드러났죠.
회사에서는 결과로 평가받지만, 블로그에서는 과정이 남습니다.
그 차이가 참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성과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내 생각의 흐름 그 자체가 기록되는 경험이랄까요.
글을 쓰는 일은 디자인과 닮아 있었다
글쓰기는 디자인과 닮아 있습니다.
형태와 구조를 잡고, 의미를 조율하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일.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엔 화면이 아닌 문장을 디자인한다는 거죠.
디자인을 할 때는 시각을 통해 메시지를 만들고,
글을 쓸 때는 언어를 통해 사고의 구조를 드러냅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조금 더 ‘명확한 나’를 만나고 있습니다.
블로그라는 작은 작업실
지금은 블로그와 SNS가 제게 하나의 작은 실험실 같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생각을 실험하고, 그림을 그리고, 언어를 다듬고,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회사 밖에서도, 누군가의 피드백과 공감을 통해
제가 만드는 가치가 조금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나를 디자인하는 일
이제 저는 블로그를 단순한 기록의 도구로 보지 않습니다.
이건 결국 ‘나라는 브랜드’를 디자인하는 과정이니까요.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작업입니다.
언젠가 조직에서의 ‘나’가 사라져도,
이 기록과 생각의 자산은 제 곁에 남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다시 씁니다.
누군가는 그걸 그냥 ‘글쓰기’라 부르겠지만,
저는 나 자신을 디자인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깊게 공감합니다!! 멋진 분을 알게 되서 기뻐요 🙂
감사합니다! 팬덤디님.
블로그 자주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