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GOOD DESIGN AWARDS
Fog White 모니터 선반을 만들고 난 뒤, 저는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이라는 주관적 만족감에만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외부의 객관적인 기준, 그것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검증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국내 굿디자인 어워드와 함께, 일본의 Good Design Award(통칭 G-Mark)에도 동시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일본 굿디자인 어워드는 1957년 시작된 세계 4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로, 디자인계에서 높은 권위를 자랑합니다.
특히 제품·서비스의 심미성뿐 아니라 기능, 지속가능성, 사회적 가치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인상적이었죠.
“이 상을 받는다면, 브랜드의 첫 시작에 강력한 신뢰의 방점을 찍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습니다.

언어 장벽과 기술의 발전의 고마움
가장 먼저 부딪힌 건 ‘언어’였습니다.
참가 신청은 물론 영어로도 가능하긴 했지만, 기본 가이드가 일본어/영어로 제공되었습니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저로서는, 안타깝게도 모든 세부 규정과 심사 항목을 번역하면서 이해해야 했습니다. 이때 저는 Chat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시대의 발전이 얼마나 다행인지…) 또한 단순 번역을 넘어, 한국어로 작성한 스크립트를, 그 뉘앙스를 잃지 않게 디자인 심사에 맞게 조정하는 작업도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한국의 ‘여백’의 미와 원오프의 제품이 결을 같이한다고 생각하여 이를 스크립트로 번역하고자 하였지만, 적절한 늬앙스를 찾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가지를 리서치 하다가, 일본의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였던 유명 디자이너 ‘하라켄야’의 ‘空’ 철학이 여백의 미와 일맥 상통한다고 생각하여, ‘空’, ‘Emptiness’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 번역이 아니라,
‘우리 제품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이게 하는 국제적 디자인 언어’로 재가공하는 작업이었죠.
역시 명성만큼 만만치 않은 심사 과정과 참가 조건
일본 굿디자인 어워드는 1차 스크리닝 → 2차 스크리닝 → Best100 발표로 진행됩니다.
- 1차 스크리닝 (서류 심사): 제품 개요, 디자인 의도, 차별성, 사용자 가치, 사회적 기여도 등을 온라인 서면으로 제출
- 2차 스크리닝 (실물 심사): 도쿄 현장에 제품을 직접 설치하고, 심사위원들이 실물을 보고 평가
- Top100 프레젠테이션: 우수 디자인 Top 100의 디자이너들이 직접 자기 제품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우승자 선정
비용 구조도 꽤 명확합니다.
- 1차 스크리닝비: 16,500엔(약 16만 원)
- 2차 스크리닝비: 71,500엔(약 71만 원)
- 섹션 추가 비용: 17,600엔(약 17만원/옵셔널)
- 테이블 추가 비용: 6,600엔(약 6만원/옵셔널)
- 공식 설치 에이전시: 제품 갯수, 무게, 설치 범위에 따라 별도 견적
- 3차 어워드 패키지: 181,000엔(약 180만원)
비용이 어마어마 합니다.
참고로, 1차를 통과하면, 2차 실물 심사를 위해 도쿄 현장 설치가 필수입니다.
TOP 100에 들어 우승을 하게 되면 추가로 180만원을 내야합니다.
현실의 벽… 실물 설치
1차 통과 소식이 왔을 때, 저와 와이프는 정말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죠.
문제는 제품 설치였습니다.
Fog White 모니터 선반은 알루미늄과 15T 아크릴 구조로 제작되어, 한 개당 무게가 약 8.5kg입니다. Dual과 Single 두 개 세트를 출품하기로 했으니, 총 17kg 정도가 되는 무게였죠.
8월, 도쿄의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이 무게를 들고 이동하고 운반, 설치까지 해야 한다는 건 금전적, 물리적으로 상당한 부담이었습니다. 게다가 와이프는 임신 초기상태라 각별하게 조심해야 하는 시기였죠. 저는 직장에도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 업무 외 일로 오래 나가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공식 설치 대행의 유혹과 좌절
그래서 굿 디자인 어워드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공식 설치 대행 서비스’를 알아봤습니다. 일본 굿디자인 어워드 측이 해외 참가자를 위해 지정된 설치 업체를 연결해주는 것인데, 견적을 받고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설치 비용: 180만 원 (운반, 설치, 철거 포함)”
기본 공간이 협소하여 섹션추가, 테이블 추가 등을 합하니, 스크리닝비 약 100만 원에 설치비 180만 원을 더하여 총 280만 원이 2차 스크리닝 과정에서 소요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희가 일본에 직접 다녀오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브랜드 홍보·포트폴리오 가치를 생각하면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브랜드 런칭 초기, 그 금액을 설치와 운송에만 쓸 수 있을지 냉정히 판단해야 했습니다.
결국 내린 결정
며칠 간의 회의와 계산 끝에, 2차 심사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이 쉽진 않았습니다.
이미 참가 신청을 했기 때문에, 2차 참가를 포기해도 100만 원의 참가비는 환불되지 않는 구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차 스크리닝 참가 신청 이후 유예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굿디자인 어워드도 참가하였고, 2차 이후 파이널까지 통과하게 되면, 직접 스피치를 해야함은 물론, 180만원이라는 금액을 또 내야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포기하는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억울했습니다. 아직 브랜드의 비지니스가 크게 성장하는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출은 저의 개인 자금에서 나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값비싼 수업료’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점
이 과정에서 저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 국제 디자인 어워드 참가 비용 구조를 사전에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 단순 참가비 외에, 설치·운송·현지 체류비가 실제 부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 언어·문화 장벽이 제품 설명에도 큰 영향을 준다.
- 단순 번역이 아니라, 심사위원의 문화·미학적 코드를 이해하고 반영해야 합니다.
- 투자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 한정된 예산에서, 어떤 비용이 브랜드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줄지를 판단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도, 경험이 준 의미
비록 2차 심사까지 가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건,
디자인의 퀄리티와 시장 진입 전략은 별개의 축이라는 것.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브랜드의 물리적·경제적 조건을 감안하여 어떻게 이것을 외부에 알릴지를 전략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무시한 채 무모하게 도전하는 건 더 많은 기회비용을 소모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었죠.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 굿디자인 어워드에서 끝까지 도전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국내 어워드가 왜 초기 브랜드에게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지도 이야기할 겁니다.